[기고문]독립운동 여성 경찰관 희생 관심 가져야

백승안 기자l승인2019.03.10l수정2019.03.1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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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남뉴스 백승안 기자] 1910년 2월 14일 중국 뤼순 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됐다. 피고인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였다.

이 소식을 들은 조마리아(1862〜1927, 본명 조성녀) 열사는 편지 한 통을 썼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안중근은 1910년 3월 26일 뤼순감옥에서 어머니가 만든 수의를 입고 순국했다. 이 말은 우리 독립운동 역사상 가장 비장하고 슬픈 한 마디로 남아있다. 조마리아 열사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과 함께 독립투사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정부는 2008년 8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독립유공 포상자는 총 15,511명이다. 건국훈장 10,965명, 건국포장 1,280명, 대통령 표창 3,266명이며 여성은 432명에 불과하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은 2,0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유관순 열사를 제외 하고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남자현 열사의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이 유일하다.

여성 경찰관들의 활약은 더더구나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지난해, 제3대 서울여자경찰서장 안맥결 여사에게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안 여사는 안창호 선생의 조카딸이다.

1919년 평양 3·1운동과 숭의여학교 10·1만세 운동에 참여했다가 투옥됐다. 만삭의 몸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일제의 고문을 견뎠다. 양한나 전 수도여자경찰서장은 3·1운동 이후 중국과 부산을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면서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또 비밀단체를 만들어 3·1운동에 참여한 이양전 전 부산여자경찰서장은 1920년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1주년 만세 시위에 참여했다가 투옥됐다. 문형순 전 성산포경찰서장은 1929년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 ‘국민부’ 중앙호위대장을 맡는 등 항일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경찰청이 발굴한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관은 31명이다. ‘조국의 봄’을 위해 희생한 여성들을 발굴하고 숭고한 정신을 기억해야 한다. 3·1운동 백주년이 지났고 오늘은 제111주년 세계 여성의 날이다. ‘자유에 공짜가 없다’는 뜻을 한 번쯤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거창경찰서 수사과 수사지원팀장 문남용 경위 


백승안 기자  bsa67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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