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남뉴스 백승안 기자] 지난 8월15일 경남도청에서 거행된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거창출신 독립운동가 양천(陽泉) 전사옥(全駟玉)선생이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1930년 진주공립보통학교(현 진주고교)재학 중 백지동맹, 비밀결사 독서회 책임자로 활동하다 경찰에 체포되어 진주 형무소에서 10개월간 미결수로 구속되어 있으면서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징역 1년, 집행 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으며, 이후 몽양 여운형 선생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을 했고 해방 이후 청년들과 건국 준비에 몰두했던 거창출신 전사옥(全駟玉 1915~? 가북면 해평리)선생이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정부서훈이 추서되어 유족에게 전달됐다.

이날 건국포장을 받은 전사옥 선생은 1915년 거창군 가북면 해평리에서 태어나 거창 가조 공립 보통학교(현 가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학생 운동이 일어난 해인 1929년 진주 고등 보통학교에 진학했다.

1929년 11월 광주에서부터 시작해서 이듬해 초까지 전국 각지에서 반일 학생 투쟁이 일어날 때, 서부 경남 지역에서도 1930년 1월 17일 진주 고보와 일신 여고보 학생 500여 명이 항일 시위(진주 고보 사건)를 벌이다 수많은 학생들이 퇴학 처분을 당하고 주모자 20여 명은 구속됐다.

당시 진주 고보에 재학 중이던 전사옥 선생은 진주 고보 사건을 접하면서부터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어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에 뛰어들어 조선 식민화 교육에 반대하는 백지동맹(시험지를 백지로 제출하는 학생들의 항일 시위) 사건으로 정학을 당했다. 또한 사회사상 연구단을 조직하여 비밀 결사 운동을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전사옥 선생은 일본으로 건너가 주오(中央) 대학에서 유학을 했으며 재학 중이던 1930년대 중반부터 몽양 여운형의 지도를 받으면서 재일 유학생들을 조직화하고 항일 사상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섰다.

여운형 그룹의 핵심 인물로 활동하던 전사옥 선생은 1941년에 귀국하여 서울 영등포 공장 지대를 중심으로 청년과 노동자 계급을 조직하여 반제국주의 사상을 지도하는 한편, 항일 지하 운동을 전개했다.

전사옥 선생은 조국의 해방을 맞은 이후 여운형을 따라 건국 준비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청년 운동을 전담했다. 청년 운동에 몰두하던 전사옥 선생은 1945년 11월 29일 천도교 회관에서 44개 단체 대표 8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국 청년 단체 총동맹 서울시 연맹 결성 대회에서 중앙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정판사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어 고초를 겪었고, 1947년 6월 제2차 미·소 공동 위원회에 청총의 대표로 참석하는 등 꾸준하게 활동을 하였으나, 그 이듬해인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거창 출신의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청년 운동가인 전사옥 선생은 엄혹한 일제 식민 지배 하에서 조국과 민족 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치열하게 살았다. 국가 보훈처는 전사옥 선생의 항일 독립 활동 사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정부 수립 이후의 행적과 사망 연대가 불명확하다는 것을 이유로 아직까지 공식적인 독립 유공자로 승인하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전사옥 선생 후손들은 전사옥 선생의 최후를 확인하지 못한 관계로 묘를 쓰지 못하고 고향인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해평리 달밭 마을에 전사옥 선생을 기리는 제단비(祭壇碑 2007년 6월 10일)를 세우고 전사옥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활동에 대한 합당한 평가와 대우를 요구해 왔다.

이날 경축식에서 경상남도 김경수 도지사는 “우리가 새롭게 기억해야 할 세 분의 자랑스러운 경남의 또 다른 역사가 있다”며 독립운동가 故전사옥, 故전병창, 故조용명 선생을 소개했다.

김 지사는 3인의 독립유공자 소개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사실이 충분히 인정되지만 정부 수립 이후의 행적과 사명연대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된 평가와 대우를 받지 못해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라며 “비록 늦었지만 광복의 역사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신 세 분의 독립유공자와 유족들께 뜨거운 감사와 죄송함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 지사는 이날 “광복을 위해 애써온 분들의 모든 노력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합당하게 예우 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유공자와 보훈가족의 희생을 기억하고 정신을 계승하는 일은 나라를 지키는 일과 같다”고 역설했다.

경남도는 보훈가족 예우 강화 차원에서 면우 곽종석 선생의 유허지를 비롯해 훼손되고 멸실된 독립운동 유적지를 시군과 함께 복원할 계획이다. 故곽종석 선생은 한말의 학자로 을사조약 체결 후 매국노의 처형을 상소했고,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독립호소문을 최종 검토한 인물이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한편 전사옥 선생 손자 전준석(59 남)씨는 “그동안 조부님의 과거 행적에 가족 모두가 쉬쉬하며 조부님의 훌륭하신 업적을 밝혀내기에 주저해 왔던 지난날들이 너무도 부끄럽고 조부님께 죄송하다”며 “비록 늦었지만 이제라도 조부님의 조국에 대한 헌신적인 애국심과 희생의 대가가 인정받을 수 있게 되어 국가에 감사하고 조부님의 얼을 이어받아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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