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남뉴스] 전염병의 흑역사에서 가장 비참했던 적은 아마도 중세 유럽을 덮친 흑사병 때가 아닐까. 고난과 역경은 종교인에게 숙명이라지만 바이러스는 종교인을 가리지 않았다. 한 명의 종교개혁가와 한 명의 황제가 걸어간 삶을 통해, 코로나19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고민해 본다.

#1. 마르틴 루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웃을 구하라"

1527년 루터는 '종교인은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가'라는 소책자를 제작했다. 흑사병이 덮쳤는데 '그리스도인이 도망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전염병은 하나님의 형벌이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은 잘못이고 불신앙이라는 게 당시 기독교 사회에 팽배한 생각이었다. 이에 루터는 전염병은 하나님의 뜻이지만, 퍼트리는 것은 마귀의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루터는 스스로 묻고 답했다.

"집에 불이 났는데,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만히 두어야 하는가. 물에 빠졌는데, 그대로 익사해야만 하는가. 배고프고 목마를 때 당신은 왜 먹고 마시는가."

"만일 누군가 불이나, 물이나, 고통가운데 있다면 나는 기꺼이 뛰어들어 그들을 구할 것이다."

실제로 작센 주의 영주가 인근도시로 피하라고 명했지만, 루터와 동료들은 떠나지 않고 환자들을 돌봤다.

그러고는, "집과 마당을 소독하라. 사람과 장소를 피하라.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소독하고 정화할 것이다.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고, 이웃 간의 감염을 막을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했다.

#2. 한 고조 유방. "긴 싸움에서는 사냥개보다 사냥꾼이 필요하다."

2,200년 전 초한쟁패기, 항우와 유방은 '형양성고전'이라는 2년 5개월간의 지리한 공방에 들어갔다. 결정적 한방 없이 서로 물고 물리는 장기 대치였지만 사실상의 승부는 여기에서 결정되었다.

승부를 결정한 건 바로 보급이었다. 항우는 모든 접전에서 이겼지만 단 한번의 패배로 역사에서 저물었고, 모든 패배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승리로 유방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전선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관중(현, 섬서성) 지방에서 '소하'는 지속적으로 물자와 병사를 보급하며 유방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항우를 점차 지치게 만들었다.

바로 한나라 개국 일등공신으로 선정된 '소하'의 역할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던 싸움도 기이한 전략으로 승부를 뒤집는 '한신'이나, 고비 때마다 묘책으로 위기를 극복해 낸 '장량'과 달리, 소하의 역할은 화려하지 않았기에 주목받지 못했다. 아무에게도.

승자가 된 유방은 논공행상으로 몸살을 앓았다. 급기야 조참과 번쾌와 같은 개국공신들은 소하의 공을 1위로 올리는데 일제히 불복하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해냈다. 유방은 한 마디로 이들의 불만을 잠재운다.

"토끼를 쫓아가 죽이는 사냥개에게 토끼가 있는 곳을 알려 주는 존재는 소하뿐이다"

사냥꾼은 사냥개의 목줄을 놓아 짐승이 있는 곳으로 보낸다. 토끼를 직접 잡은 사냥개는 칼을 찬 장군들이었지만, 토끼를 쉽게 잡도록 판을 짜고 부족한 피를 수혈한 사람은 소하다. 유방의 선언에 급소를 찔린 듯 아픈 침묵이 흘렀다.

코로나가 덮치고 2개월째 지역경제는 패닉에 빠졌다. 다만, 너도 나도 어렵기 때문에 먼저 울지 못할 뿐이다. 가난한 자가 먼저 목이 마른 법이다.

이제 식량 창고도 점검해야 한다. 호흡을 길게 잡고 육아, 보육, 교육, 자영업, 영농준비, 재래시장, 노인, 건강, 서민경제 전반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할 때가 되었다.

코 앞에 닥친 총선도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선거가 될 것이다. 어떻게 준비해야 투표권을 제대로 보장할 것인지,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민과 과감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거창엔 믿음으로 똘똘 뭉친 은혜의 강이 없겠는가. 우리 교회가 사랑보다 믿음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지는 않으리라 본다. 예수님이 외친 사랑이 고작 자기애는 아니라고 본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또 다시 코로나는 안된다.

개인의 창의력은 고작 물건하나 만드는데 그치지만, 집단의 상상력은 역사를 만든다. 시민적 상상력. 우리 지역의 수준은 지금이 결정한다.

그래서 지금은 미래다. Now is future!

거창군보건소 상황실 근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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