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한 영국의 계관시인 워즈 워드는 어린이는 미래의 아버지라고 역설적으로 어린이를 정의한다. 자연의 순환계를 돌면서 어린이는 장성하여 어른이 되어 미래를 짊어지고 이어간다. 인류역사발전의 기본명제가 미래의 어른인 어린이의 탄생에 있다. 자손을 퍼뜨리는 행위는 인간의 숭고한 의무이며, 이것 이상으로 긴요한 되 물림의 명제는 없다. 그래서 어린이는 무조건 잘 키워야 하는 것임을 세계 방방곡곡에서 목 놓아 외치는 것이다.

어린이날을 맞이하고 있다. 소파 방정환선생님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어린이의 인격과 권리를 위해 제정한 어린이 날이다. 본성적 유아기를 지나 이성적 어린이기(期)는 자아가 발달하며 성격형성이 구축되는 시기이다. 아동발달심리학자의 말을 빌리면 일생동안 살아가야 할 인간의 성격은 아동기에 백 프로 결정되어 진다고 한다. 따라서 어린이에게 양질의 성격을 형성하기 위해서 어린이에 대한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삼위일체로 유기적 교육이 되어야 한다.

아동학대가 심심찮게 언론의 일면을 차지한다. 부모의 무관심과 방치로 사경을 헤매다 결국 피워보지도 못한 아까운 어린생명이 죽어간다. 부모의 학대로 매를 맞고 고통 속에서 목숨을 빼앗기는 사건도 우리주변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물신주의의 노예가 된 사회병리구조 속에서 인간의 가치관이 혼잡하며 생명존중사상이 퇴색되어가는 사회현상이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생태적으로 난자와 정자가 교류하여 새 생명을 잉태한다. 몇 만개의 정자 중에서 가장 건강하고 힘이 굳센 정자 하나가 난자에 입성하여 귀한 생명이 영광스럽게 탄생되는 것이다. 그러니 생체학적으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확률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온 우리의 후손들이 어린이인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서 현재를 이어오고 현재에서 미래를 이어가는 숭고한 이음의식은 우주생명체의 고귀한 질서에 해당한다.

어려운 확률로 얻은 어린이는 법 이전에 초자연의 상식으로 잘 자라야하는 절대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린이는 생명의 신(神)이 부여한 인격체로 부모들의 소유물이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어린이에 대한 무자비한 사건사고는 부모들이 무의식속에 깊이 숨겨진 잠재소유의식에서 어린이의 불행이 속출되는 것이다. 낳기는 부모가 낳았지만 세상에 나오자마자 어린이는 부모개인의 부속품이 아니라 당연히 미래희망군단의 사회공동체에 편입된다는 인식을 부모가 공유해야 한다.

자연재해나 인재가 나서 인명을 건지는 순위도 어린이가 먼저이다. 철칙이다. 왜냐하면 우리미래를 이어가는 희망의 마지막보루이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없는 나라나 세계는 미래의 전망이 절망으로 치달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자연을 순환하는 불변의 질서를 세웠다. 순리이다. 흘러간 물, 흐르는 물, 흘러 올 물의 자연스러운 순환계를 보면 어린이의 존재는 미래를 제시하는 희망의 메시아이다.

어린이를 잘 키우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맹목적으로 감싸 안는 어린이 교육은 나약하고 강건하지 못하다. 정의를 존중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약자를 도와주고 배려하는 그리고 사회공동체로서의 정직하고 희생하며 봉사할 줄 아는 참 어린이로 기르는 사회교육을 어른들이 공동으로 이끄는 분위기가 성숙해야 한다. 가정교육의 자립성, 사회교육의 공익성, 학교교육의 협동성이 미래에 강한 어른을 만드는 어린이 교육의 기본원리일 것이다.

어린이가 자라면 어른이 되고 더 자라면 어르신이 된다. 결국 어린이가 어르신이 된다. 확실한 자연의 순환질서이다.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 미래의 희망을 이루고 또 어르신이 되어 어린이를 키워나가고 이렇게 인간사회는 소리 없이 순환계를 따라 현명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어린이가 참 어린이가 되어 미래의 희망을 참되게 심고, 또 그 후의 다음 어린이가 참 어린이가 되는 순환 고리의 숙명적 사이클 속에 미래는 벅찬 감동의 희망으로 항해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어린이여 참되게 자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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