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연등값을 제대로 치르려면...

고요한 숲속에 기분좋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에 야자나무 열매 하나가 꿍! 하고 떨어졌다.

나무아래 낮잠을 자고 있던 토끼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없이 뛰었다.

건너편에서 쉬고 있던 노루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뛰고 있어’

‘지금 엄청난 굉음을 들었어.. 지진이 난 것같아.. 위험해.. 빨리 뛰어..’

그 소리를 듣자마자 노루가 토끼의 뒤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옆에 있던 사슴도 무슨 일인가 하여 같이 뛰었다.

그러자 숲 속의 다른 동물들도 덩달아 함께 뛰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래?...

몰라... 지금 땅이 갈라지고 있대. 살려면 무조건 뛰어야 해..

숲속의 동물들은 모두 앞다투어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고요하던 숲속이 일순간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 때, 호랑이가 멈춰서서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모두 정신없이 뛰고 있는거냐?’

‘몰라!’

‘어디로 가는데..’

‘몰라.. 앞에서 뛰니까 그냥 뛰는 거야...’

 

호랑이는 근원을 묻기 시작했다.

숲속 동물들은 이유도 모른체 다른 이들이 뛰니까 그냥 뛰었다고 하였다.

사슴은 노루가 뛰니까 그 뒤를 따랐다 하고, 노루는 토끼가 뛰길래 그 뒤를 따라 뛰었다고 하였다. 토끼는 자다가 큰 소리에 놀라 그냥 뛰었다고 하였다.

모두가 제대로 원인도 파악하지 않고 그냥 따라 뛰고 있었던 것이다.

 

호랑이와 동물들은 다함께 문제의 근원지를 찾아갔다.

토끼가 뛰기 시작했던 그 지점에는 그저 무심한 야자나무 열매 하나가 바닥에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네 삶의 모습도 비슷하다.

왜 뛰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그 이유도 모른체 토끼를 따라 그냥 바쁘게 뛰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한번쯤 멈춰서서 자신에게 냉철히 물어야 한다.

‘너는 지금 어디를 가고 있니?’

 

그러려면 흐리멍텅해서는 안된다.

초롱초롱 깨어있어야 한다.

 

불교 초기 경전인 『수타니파타』에서 이렇게 게송으로 설하고 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如獅子聲不驚)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如風不繫於網)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如蓮花不染塵)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如犀角獨步行)

홀로 행하고 게으리지 말며

어떤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마라...

 

초파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색색의 오색등이 봄날 꽃잎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정신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우리 삶에도 한번쯤 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서서 자신의 마음자락 돌아봐야 한다.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를 믿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자성(自性)의 부처를 믿는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이 길에 내 마음이 담겨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래야 사월초파일 부처님오신날 법당에 밝혀놓은 연등값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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