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출범한 양동인 호의 거창군은 이제 8개월이 지났다. 폭풍속의 거창호에 새로운 선장으로 올라타면서 격랑에서 순풍으로 끌어주길 기대했다. 리더십의 장기공백 속에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에 8개월이 결코 짧지 않았다는 분위기다.

거창의 체질 개선을 위해 많은 영역에서 의욕적인 손질을 가해오다 급기야는 취임 6개월 만에 예상치 못한 선거법 송사에도 휘말렸다. 결과를 떠나 송사에 휘말려 군민에게 걱정을 끼친 일은 10년 가까운 정치 경륜으로 보아 노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원인을 놓고 많은 이들이 설왕설래 한다. 호불호와 시시비비가 분명하고 정공법만 고집하는 그의 성향 때문이라는 것. 이런 성향은 행정가로서의 장점과 정치인으로서 약점이라는 양면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의 양 군수는 자연인이 아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군민의 삶과 밀접한 군정책임자로서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지나온 성과와 반성, 내일의 과제와 책임을 던져 주어야 할 때다.

소통행보, 갈등의 골 메우고 샅샅이 챙기는 저공비행

구치소 이전, 국제연극제 갈등, 장애인근로사업장, 스포츠 클럽, 선거 후유증, 양돈단지와 골재채취, 문학관 운영, 대동로터리 등 8개월 동안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장애물과 지뢰밭이 앞을 가로막았다.

고장난 군정과 장애물들을 제거하지 않고는 군정의 정상화도 요원해 보였다. 답답한 해답은 결국 군민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군민의 눈으로 문제를 보기 위해 양군수가 선택한 해법은 저공비행이었다.

대립과 갈등도 다수 군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주민토론회는 7회에 걸쳐 15개의 주제를 다루었고, 열린 보고회는 전문가와 민간인이 참여해 5차례 열고 의견을 반영했다.

저공비행으로 갈등을 예방하고 치유해보자는 고민의 결과였지만 2년차에는 더욱 진화된 형태의 변화를 기대한다. 양군수도 이제는 하얀 가운을 벗어 던지고 치료하는 의사 역할을 끝내야 한다. 현장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영업사원의 넥타이를 매야 한다.

구치소 이전, 길고 긴 터널의 출구가 보이지만 아직은 오르막이다.

3년간 갈등에도 여전히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이었다. 양군수가 취임하고 다양한 물밑 접촉과 공식 협의에도 확실한 뭔가를 내놓지 못해 많은 군민들이 답답해했다. 11월 8일 드디어 “민원이 없고 합리적인 대체부지를 연내까지 마련할 경우 적극 검토”라는 협의를 법무부로부터 전격 이끌어내면서 급물살을 탔다.

이후에는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대체부지선정위원회 구성, 세 차례의 위원회와 군민설명회 개최, 후보지 물색 과정에서 주민들의 유치제안서도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12월 8일 법무부와의 실무협의를 토대로 다시 주민 공청회와 군의회 최종보고가 이어진다. 쉽지 않은 과정이 남아 있지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이다.

이제 실마리를 잡았고, 길고 길었던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오르막이 가로막고 있지만 행정력만으로 부족한 힘을 군민이 떠받치고 있다. 마지막 오르막에서는 젖 먹던 힘까지 보태고 마력수를 더 높여야 한다.

국제연극제, 군민을 외면하는 축제는 결코 명품이 될 수 없다.

양군수가 취임하고 28회 국제연극제는 예산지원 중단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어쩔 수 없는 결단이라는 의견과 그래도 연극제는 살려야 한다는 견해로 양분되었다. 극약처방의 바탕에는 ‘군민 적 축제의 사유화’에 있었다.

특정인들에 의해 연극제가 좌지우지되고 예산집행의 불투명으로 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되었다. 급기야 내부갈등으로 소송까지 이르게 되면서 지역인지도를 높여야 할 축제가 오히려 지역 이미지를 갉아먹었다.

28년을 이어온 연극제도 결국은 군민의 동의하에 성장했을 뿐인데도 이를 간과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연극제는 이제 군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군민의 군민에 의한 군민을 위한 연극제로. 이를 위해 문화재단 설립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 집단이 연극제와 각종 축제를 기획부터 행사운영까지 행정의 간섭없이 진행하고, 예산은 공무원이 집행해 비리를 사전 차단하는 시스템으로 가기 위한 조직이다. 내년 연극제는 군민과 함께하는 축제로 다시 태어나도록 문화재단이 산파 역할을 맞는다.

장학회사무국 폐지, 옥상옥(屋上屋)과 위인설관(爲人設官)을 제거

사무국 폐지 이유는 간단하다. 폐지로 인해 절감되는 경비를 5년만 합쳐도, 100억 기금을 1년 운영한 효과보다 훨씬 크다. 100억 장학기금을 운영하는 장학회는 매년 200여명의 장학생을 선발하고 예체능과 심화수업을 지원해 왔다.

출연사업으로 원어민사업과 국제화 교류, 인재스쿨 및 연극동아리 지원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공무원들이 예산운영과 행정을 지원하고 있는데도, 별도의 사무국을 두는 것은 옥상옥 또는 위인설관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2명의 인력과 사무실을 운영하는데 연간 7천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고등학생 기준 140여명, 대학생 기준 30~40명의 장학생 추가 선발이 가능한 절감효과가 있다.

장애인근로사업장, 3년간 병든 환부를 수술대에 올려

중증장애인 근로기회 제공을 위해 설립된 근로사업장은 군에서 위탁하고 장애인단체가 수탁하여 3년간 운영해 왔다. 지난 6월, 수탁기간 3년 경과후 새로운 수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누적된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처음 출발할 때 공익적인 수탁자와 전문성을 갖춘 민간사업자로 이원화된 운영주체가 문제의 불씨였다. 수탁자는 필요장비를 임차하고 임차비에 따른 부채와 책임만 짊어진 형국이었다. 수탁기간이 끝난 후 새로운 수탁자는 이원화된 운영 방식과 누적된 부채 문제를 알게 되자 계약을 포기하기에 이르렀고, 양군수는 재차 수탁자를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자립경영을 어렵게 만들었던 장비를 군에서 구입해 주면서 품질향상과 신뢰도를 확보하고, 임차료를 없애 월 500만원씩 부채가 쌓이던 근본원인을 제거했다. 우량기업과 MOU도 체결하면서 안정적인 생산기반과 판로도 확보했다. 농가에 공급되는 포장재 가격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덤이다.

K-스포츠클럽, 이해관계 조정과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는 군 직영이 답이다.

K-스포츠클럽은 국민체육센터내의 수영장, 탁구장, 볼링장을 수탁운영하기 위해 창립된 법인이다. 3개의 시설은 과거에 민간시설이 있었으나 수익성이 낮아 모두 문을 닫았고, 해당분야 애호가들의 터전도 사라져 버렸다. 공공체육시설에 해당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각계의 여론이 팽배했다. 지난해 국비지원을 받아 K-스포츠클럽을 설립하고 스포츠파크내 국민체육센터에 해당시설을 설치해 관리를 위탁하였다.

협약 조건에 명시했던 바와 같이 1년이 경과한 지난 10월 운영 평가 결과에 따르면,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우선 추구하면서 종사자간의 갈등, 잦은 민원 발생, 감독기관의 지적사항 미이행 등 여러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위·수탁 협약을 해지하기에 이르렀다. 돈이 안 돼서 민간시설이 없어졌는데, 공공시설이 장사를 한 셈이다. 공공체육시설에 편입한 이유가 공공성에 있고, 이것이 무너지면 직영할 수밖에 없다.

2017년 거창군정, 양 군수에게 바라는 군민 버킷리스트

고령화와 인구절벽에도 가까스로 인구를 지탱해 온 거창의 비결은 도시 유지의 기초인 교육, 주거, 문화, 상권, 농업경제 등이 비교적 튼튼한데서 찾는다. 하지만 위험한 징후는 곳곳에 숨어 있고 서서히 드러난다.

교육거창의 핵심인 고등학교는 중학생이 지탱한다. 지난해 729명이던 중3학년 수가 올 해는 127명이 감소한 602명이고, 2018년에는 516명까지 감소한다. 거창의 교육과 인구의 질적구조가 위험하다는 중요한 사례다.

쌀값하락, 포도농가 폐원, 오미자 과잉생산, 열사과 등 사과재배고도의 상승, 농업인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가 맞물려 악순환의 열차에 올라탔다. 고온에 강하고 노동저감형 작목을 하루빨리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지역산업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성하기 위한 미래산업도 차근차근 쌓아야 한다. 힐링랜드, 창포원, 레포츠파크와 같은 항노화 인프라를 내년에는 가시화 시켜야 하고, 산·학·연·관 4대축을 완성한 승강기 산업은 우량기업을 더 유치해 집적도를 높여야 한다.

거창의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탄핵정국과 대선정국이 이어지면서 30년 만에 1987년에 버금가는 핵폭풍이 지나갈 듯 긴장도가 팽창했다. 국제정세도 G2의 대립 격화, 선거철에 접어든 유로존, 미국의 무역장벽, 중국의 내수중심 경제구조 재편 등은 장기불황의 우리경제에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다.

그 동안 거창은 소모적인 일로 제 자리 걸음을 오래 했지만 이 또한 도약을 위한 진통이었다고 여기자. 빙하는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보이지 않는 물속에 거대한 덩치를 숨기고 있지만, 바다 속 조류를 타고 움직이며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숨어 있는 몸체다. 바다 위의 파도는 아무리 빙하를 때려도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다. 어려운 시기를 지날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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