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 웅양면 산포리 어인마을에서 의병 도대장 송암 김면 장군의 우국충정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전적비 제막식이 9일 거창군이 주관하고 김면 장군 건립추진위원회가 주최로 개최했다.

제막식은 장민철 거창군 부군수와 배용수 고령군 부군수 그리고 거창군의회 이홍희, 김향란, 표주숙 군의원을 비롯한 관계기관 관계자 뿐 만아니라 웅양면민과 거창 문화원, 거창항교, 6.25참전유공자회, 재향군인회 회원과 건립추진위원회 등 전국에서 제막식을 기념하기 위해 400여명이 넘게 참석해서 송암 김면 장군의 넋을 기리는 제막식 행사가 성료됐다.

거창군 장민철 부군수는 환영사에서 “의병도대장 김면 장군이 분연히 떨고 일어나 의병을 조직해 전라도까지 진격하고자하는 왜군의 발목을 잡고 수만에 달하는 왜적을 무찌른 혁혁한 공이 지금껏 재대로 조명 받고 있지 하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후손들에 의해 이제라도 역사 속에서 제자리를 잡아 젊은이들의 가슴에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 했다.

또한, 배용수 고령군 부군수의 축사와 의병도대장 김면 장군의 전적비 건립추진위원회 이태근(전 고령군수) 회장의 인사에서는 김면 장군의 위국충정을 거창군민과 함께 하면서 전공이 서린 우두령 아래 우척현 전투에서 왜적을 물리친 치적을 후세사람들에게 알리고자하는 취지를 담아내기도 했다.

김면 장군은 1592년 7월 초순 김천에 주둔한 왜적 1,500여명이 거창을 거쳐 전라도로 진입하려 우척현을 넘을 때 고개 좌우에 산악지형을 이용, 군사를 매복 급습하여 적을 토벌하는 대승을 거둬 왜적이 전라도로 진격할 수 없도록 전공을 세운바 있으며, 그 외에도 지례에 주둔한 1,500명의 왜적을 화공과 시공으로 박멸하고, 8월에 진주목사 김시민 군사와 연합해 4,000여 왜적과 싸워 대승을 거둔바 있다.

또한, 1년간 임진왜란 격전기에 10여 차례 큰 전투와 30여회 작은 전투를 치르면서 평소에도 갑옷을 벗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금산전투 진중에서 순국한 우국충신으로 유명하다.

송암 김면 장군은 고령에서 태어났지만 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되자 주로 거창지역에서 많은 의병활동을 했다는 역사적 기록이 있으며, 가족이 문전걸식을 하여도 한 번도 면담하지 않았으며, 1년간의 의병활동으로 영남지역의 낙동강, 거창, 성주, 김천 등지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루면서 혁혁한 공을 세워 국가로부터 “의병도대장”의 특명을 제수 받았다.

한편 웅양면이 지역구인 거창군의회 이홍희(무소속)군의원은 “송암 김면 장군의 업적에 비해 후손들에게 알려진 치적이 너무도 미미하다”고 말하고 “김면 장군이 유언으로 남긴 ‘오직 나라 있는 줄만 알았지 내 몸 있는 줄 몰랐다.’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 거창군의회 의정활동을 할 것이다”라는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9월 9일의 의미를 담아 구성된 제막위원 18명에 의해 제막된 김면 장군의 제막비 앞면에는 김면 장군의 위국충정의 의미가 구절구절 아로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김면 장군의 후손들이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려놓았다.

이 날 제막식을 마친 김면 장군 전적비 건립추진위원회 이태근 회장은 제막비 건립추진위원회와 고령김씨 문중은 웅양면 어인마을과 자매결연을 맺는다고 밝히고 제도적으로 허락한다면 추진위원 전원과 고령김씨 문중은 어인마을 명예주민으로 살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에 장민철 부군수와 이홍희 군의원은 환영의 의사를 밝히면서 추후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는 기회가 온다면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는 말로 화답을 해 송암 김면 장군을 중심으로 한 훈훈한 우애의 정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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