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남뉴스] 자가격리, 검체 채취, KF94, 드라이브 스루. 이런 어려운 단어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친숙해져 버렸다. 식당가는 지금 강제 폐쇄를 당한 곳이나 문을 연 곳이나 별반 차이 없이 적막하다.

3월 4일 현재 15명의 확진자가 나온 거창은 경남에서 인구대비 가장 심각한 지역이 돼 버렸다. 왜 그럴까. 대구와 가까워서 그렇다고 하기는 고령, 창녕, 합천을 설명하지 못한다. 합천은 인구가 분산돼 있고 거창은 읍에 집중돼서 그렇다기에도 설명이 부족하다.

거창군의 공무원들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편리하게 책임을 돌려버리거나 제물로 삼기에도 상황이 너무 무겁다. 지금은 따지기보다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닐까. 보건소의 코로나 상황실은 확진자가 1명이라도 생기면 최초 몇 시간은 전쟁터가 되고 제일 중요한 골든타임이다.

역학조사관의 판단에 따라 확진자의 감염경로와 동선 확정, 접촉자와 접촉 정도. 피조사자의 진술에 대한 진위 판단과 설득, 신속한 정보 공개. 확진자의 자택, 관련장소 소독과 폐쇄. 이런 조치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대비와 신고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만, 공포를 확산시키는 도구로 사용되면서 건강한 시민사회의 토양도 마냥 척박해지기만 한다.

이런 과정에서 자치단체장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법적강제력도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CCTV분석, 휴대폰 위치 추적, 카드사용내역 등이 결정적이지만 그 요청권한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만 있다.

군에서 도에 요청하고 도에서 장관에게 요청해서 결과를 기다린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적을 앞에 두고 총을 쏠지 말지를 물어보고 쏘아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법이 참으로 멀게 느껴진다.

늦었지만 일명 '코로나 3법'이 국회를 통과해 곧 시행된다. 자치단체장에게 직접 요청권을 포함한 강제조사권이 생기면 더 정확한 정보를 더 빨리 공개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이런 권한과 노력과는 전혀 다른 어려움이 지역사회에 퍼진 가짜뉴스와 지나친 불안, 확진자에 대한 혐오, 마스크 착용과 위생관리 등 개인예절의 소홀이다.

가짜뉴스가 생산 유통되는 언론 생태계는 이미 비만상태다. SNS의 속도, 유튜브의 일상화, 포털 노출도를 높여야 장사가 되는 속도 경쟁, 다른 언론사 기사를 취재 없이 베껴쓰기, 자극적인 제목 뽑기 등 열거하기에도 숨 가쁘다.

가짜뉴스를 막을 방법도 별로 없다. 방법이 있어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가짜는 빨라서 가깝고, 진실은 느려서 멀다. 그러는 사이에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은 이미 마비가 돼 버린다. 공포는 이런 구조 속에서 점점 힘을 키운다.

거창12번 확진자가 나오기 전 면단위 확진자가 1명도 없었을 때, 어느 면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3명 나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소문은 얼마 못가서 사실에 의해 사그라들었지만 사람들에게 퍼진 공포는 여전히 남아서 꿈틀거렸고, 땅속의 마그마처럼 더 큰 소문을 만들기 위해 더 큰 에너지를 비축한다.

문제는 방역당국이 이런 일들에도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 코로나 확산 차단이 아니라 가짜뉴스 차단에도 힘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방역당국의 역량을 분산시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현장에 힘빼기 바이러스를 침투시키는 꼴이다.

거창이 자랑하는 시민네트워크, 소문확산에 최적화된 도시형태. 이런 것들이 가짜뉴스와 불안조성의 온상이 아니라, 건강한 코로나 상식을 전파하는 창구가 된다면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내 가족만 마스크를 쓴다고, 내 가족만 안전하다고 코로나가 사라질까. '다 같이'가 답이 아닐까. 마스크 착용과 개인위생 관리만으로도 코로나는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지금 가장 좋은 의사는 배려하는 자기 자신이다. 건강한 이성, 코로나를 이기는 최강의 비결은 아닐지.

거창군보건소 상황실 근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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